언니는, 언니지.
난 언니라는 말이 좋아. 듣는 건 약간 어색한데 언니들은 좋은 것 같아. 왜 그러지? 근데 그냥 좋아. 또 생각하다 보면, 내가 ‘언니’라는 말을 듣는 걸 어색해 하는 만큼 또 상대가 어색하지 않을까 싶어서 좀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작년 여름엔 혼란스럽고 재미있었어.
가끔 학교에 갔고,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언니를 만났던가 어쨌던가. 반갑고 좋았어. 이건 비밀인데, 퇴근하고 통근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 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연장 근무를 했던 언니를 만났던 게 기억나. 지친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고, 말도 안 나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던 새벽 한 시, 아니면 두 시.
여름에 비가 오니까 송파 물류센터 쪽으로 갈 생각도 못 하겠어.
나는 지금 두 시간 간격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세 잔째 마시고 있어. 정말 장마철이긴 한가봐. 비가 그치면 집에 가고 싶은데, 오늘 안에 비가 그칠까? 안 그치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냥 우산 쓰고 집에 가야지. 가서 해야 할 게 쌓여 있는데. 다 가지고 나왔어.
사람의 감각 중에서 낯선 환경에 제일 먼저 적응하는 건 후각이래. 카페에서 일하기 전에는 ‘커피 찌꺼기 냄새’가 뭔지 잘 몰랐는데, 이제 지나치는 사람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 방금 전까지 커피 팔던 사람이구나. 정확히는 ‘원두 찌꺼기 냄새’가 나. 그런데 또 ‘원두 찌꺼기 냄새’에 갇혀 있다 보면 잘 모르겠어. 일 다 하고 나서 카페를 나오면 알게 돼. 어떤 냄새에 갇혀 있었구나.
신문지를 오십 번 접으면 달에도 닿을 수 있대. (<수학귀신>에서 봤던가.
벨루가는 일각고래과의 일각고래속의 일각고래종에 속해 있는데, 같은 종에 속한 ‘일각고래’의 뿔은 금보다 비싸게 거래됐대. 유니콘의 뿔이라나 뭐라나. 나 고등학교 다닐 때, 도서관 봉사를 갔을 때 어린이 열람실에서 읽었던 책에서 봤어. 사람 없는 공간에 몰래 서서 꽤 집중했던 기억이 나. 고대 서양의 문화를 소개하는 동화책 시리즈였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하니까 찾기도 쉽지 않더라. 집착하듯이 검색하다가 그런 걸 읽었던 게 진짜였나? 의심 하기도 했어. 50권 넘는 시리즈라서 쉽게 절판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무던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모든 것에 말이야. 너무 시끄러운 소리, 기억나지 않는 거. 도저히 검색되지 않는 정보들과,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어려웠던 다음 소설 내용. 생각하지 않는 게 정답일 것도 같은데,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어제도 새벽에 뭔가 하려고 했는데, 누워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3화부터 마지막까지 다 봤어. 이정도면 ‘뭔가 했다’고 말할 수 있지. 학기만 시작하면 집에 안 가는 게 이거 때문이야. 정말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해. 보통은 누워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그냥 잠에 들어. 힘든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
전달 받은 일기에서 지하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중학교 2학년부터 십 년 가까이를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고 있어. 중고등학생일 때에도 40분 정도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다녔어. 거의 매일 사람들과 어깨를 맞부딪히며 학교에 왔다가, 갔다가. 이어폰 안 끼면 사람 숨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이상하고 답답한 공간에 하루의 팔 분의 일 정도를 소비하고 나면 예민해지기 쉬워. 그래서 힘든가, 지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스치듯 지나갔던 뉴스에서 마른 장마라고 떠들었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 여름에는 비가 쏟아지다가, 그쳤다가, 아스팔트가 마를 때 쯤 다시 내려. 내년엔 정말 끊이지 않고 쏟아지려나. 손 흔들었을 때처럼 정말 잘 지치지만 말이야, 언니. 여름방학 잘 보내. 다음에 또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