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뭐 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올라프예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신지요?
긴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는 9월의 첫 번째 주제는 추석입니다!
리안의 에디터들이 보내는 추석의 모습을 미리 만나보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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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니
Editor 문어소세지
한국인이라면 으레 아는 인사가 있죠. 바로 상대방의 끼니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끼니 걱정을 앞세워 안부를 묻는 식의 인사는 ‘한국인은 밥심’이란 상용구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놈의 밥이 뭐길래, 걱정을 앞세워 인사를 하는 걸까요. 하지만 저도 오랜만에 상대방을 볼 때면 ‘밥은 먹었냐’는 식의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별 이유는 없고, 그저 밥을 잘 챙겨 먹고 다니길 바라는 선한 의도에서입니다.
저는 ‘안부’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안부를 묻는 것도 좋아하지만, 물음 받는 것도 좋아합니다. 왜인지 간단한 인사보단 애정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상대적으로 애정의 층위가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이런 저도 안부 인사가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바로 ‘명절’인데요!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필연적 관계의 장. 가끔 말로 상처를 주고받는 이 사람들이 함께 피를 나눈 사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낯설고,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명절이 아니면 각자 다른 지역에서 남모르게 살아갈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인사를 나누는 이런 관례가 문득 생경해질 때도 있고요. 명절 아니면 언제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겠냐지만, 과잉된 안부는 절로 몸서리가 쳐지긴 하더군요.
명절에 가장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를 순위로 매긴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명절’ 하면 합법적으로 잔소리를 듣는 날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이웃이나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거든요. 주로 통통한 제 체형을 놀리는 어른들이 많았어요. 먹는 것을 유독 좋아하던 저는 복스럽게 먹는다는 어른들의 당근과 살 좀 빼야겠다, 조금 있으면 굴러가겠다는 채찍을 번갈아 맞으며 자라났죠.
‘알 게 뭐야!’
라고 계속 넘겼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얼굴도 모르고 살던 팔촌까지 모였던 큰 제사 때였습니다. 그때 저를 힐끔힐끔 바라보던 이웃 어른이 있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촉이 남달랐던 저는 어른을 슬금슬금 피했습니다.
왜인지 저 어른이 꼭 제게 한소리를 할 것 같았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제사가 끝난 후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자리에서 어른은 저를 보며 덩치가 커서 운동을 하면 딱이겠다란 말을 우렁차게 뱉어냈습니다. 얼굴도 처음 보는 팔촌까지 모인 자리에서요! 심지어 제 또래 아이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저는 밥숟가락을 차마 들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답니다.
몰래 눈물을 훔치다 결국 아빠한테 들켜버린 건 안 비밀이지만요. 어찌 됐든 모두 지난 추억입니다. (추억이라기에는 꽤 가시 돋친 추억이긴 합니다) 법적 상 어른이 된 저도 가끔 상대방에게 안부랍시고 상처를 입히진 않을까 걱정되긴 하는데요. 이번 추석에는 안부와 오지랖의 경계를 잘 맞추며 서툴게나마 온정을 전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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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을 빚으며
Editor 올라프
그게 맛있다고?
나는 제일 맛있는데?
명절 음식에 관해 친구와 나눈 대화입니다. 한식을 싫어하는 친구와 좋아하는 저의 반응이 달라 웃기지 않나요. 명절 음식은 저의 최애 메뉴 중 하나였습니다. 송편과 산적, 명태전 등 다양한 종류의 전들, 잡채, 불고기. 이 음식들은 모두 명절에만 먹을 수 있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평소에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면 좋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음식들은 특히 명절에 많이 먹을까요?
명절에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데요. 흔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특별한 날에 먹잖아요. 잡채나 갈비는 그런 날에 올라가는 인기 메뉴죠!
이제 좀 보이시나요?
어쩌면 우리는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명절을 핑계 삼아 먹고 있던 걸지도 몰라요. 추석에 송편을 먹는 이유엔 송편을 빚으며 수확에 대한 감사함과 한해를 잘 보내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해요. 즉 하나하나 빚어 만들어지는 송편에 대한 노고는 그만큼 힘든 작업이 되는 거죠.
저는 명절이 되면 할머니 댁에 가서 친척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당연히 음식도 같이 만들죠. 어릴 때부터 옆에 붙어서 거들고 그랬답니다. 처음엔 마냥 재밌어서 시작한 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겨워졌어요.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그런데 멈출 수 없었어요. 어른들은 계속 만들고 있으니까요. 분명 저처럼 하기 싫을 텐데 말이에요.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다 주위를 둘러보면 엄마가 보이고. 큰어머니가 보이고. 고모가 보여요. 할머니는 제일 정신없이 바삐 움직이고 계시고요. 남자는 안 만들어요. 그나마 남자 사촌이 하는데요. 송편 만들 때만 심심풀이로 하다가 질리면 그만둬요. 그런데 여자들은요. 힘들어도 그만 둘 수 없어요. 누군가 한 명이 빠지면요. 남은 여자들이 더 힘들어지거든요. 그거를요. 잘 알아서 그만두지 못해요.
물론 모든 가족이 그렇지 않겠죠.
남자들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에요. 이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문화가 문제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 문화를 바꾸려면요.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
모두가 변해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명절을 명절답게 소수만이 아닌 모두가 즐겁게 보내는 그 날을
언젠가 볼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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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명절’ 하면 여행이 떠올라요. 어릴 적, 명절 때마다 외가를 가곤 했는데 그곳은 땅 끝 마을이라는 해남보다도 더 먼 곳이거든요. 자동차로 최소 여덟 시간, 거기서 또 배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하는 섬이에요. 자동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들을 싸고, 담요와 쿠션을 챙기고, 외할머니께 드릴 물건들도 싣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교통체증을 피해 한밤중이 돼서야 출발하는 ‘세미 여행’ 이었던 셈이죠.
부모님은 번갈아가며 운전대를 잡으셨어요. 저와 동생들의 역할은 뒷좌석에 앉아 부모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거나, 간식을 입에 넣어드리거나, 심심하지 않게 수다를 떠는 거였어요. 그때만큼은 어렸던 저희들이 당당히 밤을 새도 괜찮았고 컴컴한 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게임을 해도 혼나지 않았어요. 그 조그마하고 짧은 일탈이 그 때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동생들은 금세 잠들기 일쑤였고,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저만이 남아 떠들곤 했어요. 우리 어렸을 때 누가 제일 말 안 들었어?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났어? 그 땐 뭐가 유행이었어? 하는 무수한 질문들에도 부모님이 열심히 대답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 저는 또 신나서 열심히 떠들었고, 잠시 뒤에는 휴게소에 들러 함께 기지개를 펴고 잠이 깨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적막한 고속도로를 달렸죠.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왠지 모를 가뿐함을 느끼고 눈을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항구에 도착해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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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구에 도착한 그 컴컴한 새벽이 좋았어요. 거기서부턴 정말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첫 배를 기다리는 동안 자동차를 세워두고 트렁크를 연 뒤, 가족들과 그 앞에서 컵라면을 끓여먹었어요. 다들 아시죠? 바닷가에서 먹는 라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더불어 불 꺼진 매표소 화장실을 다녀오며 오싹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바다가 어디쯤부터 시작되고 있을까 가늠도 해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또 잠에 들었지만요.
아침이 오면 새벽엔 볼 수 없었던 바다가 펼쳐져 있었어요. 우리가 타야 할 배가 저만치서부터 다가오고 있었고요. 배에 타면 곧장 차에서 내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았어요. 그 때 볼 수 있는 바다의 색은 제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색이에요. 초록과 파랑 사이 부서져가는 흰 물결. 못 본지 오래 된 그리운 색이기도 하고요. 이번 추석엔 다시금 항구로 떠나는 여행을 갈 수 있길, 간만에 그 바다의 색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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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방학
Editor 토마토
명절이라니. 달력에 빨간 날이 네 개, 아니면 다섯 개 씩 몰려 있는 주간이면 곤란해집니다. 저희 집은 번화가 근처인데요, 그런 날이면 닫는 가게가 많아지니까요. 먹을 것도 없고, 갈 카페도 없고,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가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집에 있는 거죠, 명절이니 뜸한 연락을 기다리면서, 유X브 영상을 틀어두고.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명절입니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 명절이 반갑기도 합니다. 사람이 없거든요. 제가 일하던 카페는 사무실이 몰려 있는 번화가 근처 였는데, 명절, 크리스마스, 연초, 연말 등등 모두 수상하리만치 한산했습니다. 가끔 오는 사람마저도 저 같은 사람들 뿐이어서, 두어 시간에 한 번 정도 간단한 음료를 시킬 뿐이었어요. (요즘은 카공족이 사회적인 문제라면서요, 알바 입장에서는 아주 환영할 만한 손님입니다.) 그런 기억이 납니다. 손님이 없으면 그냥 쉬는 거 아니냐고요, 글쎄요. 저는 이미 출근 했고 열심히 서 있는 중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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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족들이 모이는 곳에 저도 은근슬쩍 끼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다지 탐탁지 않게 되었습니다. 쓸데없는 잔소리 때문이 아니라요, 여자들만 따로 모여 앉아 어쩐지 빠르게 밥을 먹는 순간 때문도 아니라, (저희네 명절도 비슷하긴 했습니다만…) 무료하고 심심하게 늘어져서 ‘쉬어도 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그렇습니다.
쉬는 게 잘 안 돼요. 쉬는 저 자신이 못나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산책이라도 해야, 끊임없이 걷거나 음악을 듣거나 어디 대형마트라도 가서 몸을 피로하게 만들어야 ‘쉴 자격’이 주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요. 추석은 꼭 ‘가을방학’ 같아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아쉽지만은 않습니다. 명절이 지나면 제가 가야 할 곳으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어느 날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명절, 어느 때처럼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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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똑같이 쉬겠죠, 아르바이트도 그만 뒀겠다, 또 문 여는 카페를 찾아서 동네를 서성거려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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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계절에 주름은 물들고
Editor 보리수
어느새 추석이 다가오네요. 사과도 자두도 보리수도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에요. 수확의 시기죠. 빨갛게 물들어가는 계절이고요. 그거 아세요? 저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대추나무가 있어요. 굉장히 크고 오래된 그 나무에는 단단하고 반짝이는 잎과 무수한 대추열매들이 달려있어요. 대추는 아직 초록이에요. 어렸을 때 초록대추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아주 작은 사과같은 맛이었어요. 굉장히 달고 아삭했죠. 그래서 오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열매를 따서 먹어봤는데... 아직 덜 익었는지 풋풋한 맛이 나더라고요. 그 맛이 아니었어요. 사실 대추는 빨갛게 익어서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많이 봐왔던 것 같아요. 빨간대추는 쫀득하면서도 단맛이 강해서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죠. 수정과나 식혜에 들어있는 대추는 유독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자주 먹거나 찾거나 하는 과일은 아니어서 마주할 때마다 생소한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어렸을 때 문 앞에 말리고 있는 대추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대추를 가까이서 보고 만져봤던 것 같은데, 정말 신기했어요. 어떻게 과일에 이렇게 주름이 많이 생겼을까 하고요. 그런 빨간대추가 첫인상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초록대추를 보게 됐을 때는 그게 대추일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아예 다른 열매라고 생각했던 거죠. 맛도 색도 너무 다른데 그게 같은 하나의 과일이라는 게, 여전히 신기하게 느껴져요. 그런 과일은 대추가 거의 유일한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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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어요. 대추나무는 꽤 외진 곳에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엊그제 해가 질 무렵에 산책을 하다가 유난히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발견하고 다가갔어요. 보통의 나뭇잎보다 두껍고 단단하고 유광으로 빛나고 있었죠. 무슨 나무일까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초록대추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어요. 중간중간 빨간대추도 보였고요. 그제서야 제가 오래도록 대추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게 뭐 별거라고요. 맞아요, 대추를 잊고 살아도 큰 지장은 없어요. 그저 대추를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떠오를 뿐이에요. 정확히는 할아버지들이요. 제가 처음 대추를 먹었던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건 할아버지로부터였던 것 같아요.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에 들려있던 대추가 초록대추였는지 빨간대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아주 달았다는 것과 나중에 빨간대추를 보았을 때 할아버지의 손이 생각나게 되었다는 것, 그뿐이죠.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요. 엄마가 아빠를 만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렇지만 제사를 지낼 때면 늘 보게 되는 외할아버지의 사진이 있었고 제사상에는 대추가 빠지지 않았어요. 저는 왠지 빨갛고 주름진 대추와 할아버지들을 자꾸 함께 연상하게 됐어요. 저에게 처음 대추를 맛보여주셨던 할아버지 역시 몇 해 전에 돌아가셨어요. 이후로 제사를 몇 번이나 치렀는데도 저는 대추를 잊고 있었어요. 대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지만, 분명 제사상에는 있었을 거예요. 왜 오늘에서야 갑자기 대추가 눈에 들어왔을까요. 그것도 푸르고 빛나는 한아름의 대추나무가요. 어쩌면 초록대추와 빨간대추는 저와 할아버지의 모습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맛도 색도 다르지만 같은 존재니까요. 저도 언젠가는 빨간대추가 될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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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와요. 추수의 계절이고 수확의 시기예요. 많은 것들이 빨갛게 물들어가요. 저는 오래된 기억들에 물들어갈지도 모르겠어요. 가을은 그런 계절이잖아요. 오래된 기억들로 우리는 더 다채로워지는 게 아닐까요? 마치 가을나무처럼요. 다가오는 추석도 하나의 단풍잎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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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에디터들의 원고를 보며 어쩐지 처연하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흔히 생각하는 추석의 모습과 사뭇 다르기도 하고,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뭉클하기도 했거든요. 여러분은 '추석'하면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부디 다가오는 추석을 건강하고 따뜻하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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