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나의 일상은?
메일을 보낼수록 비밀을 털어놓는 기분입니다.
저는 산책이라면 좀 일가견이 있어요. 밤마다 나가서 세 시간동안 걷기만 하다가 들어오는 걸 누가 산책이라고 불러줄 지는 의문이지만요. 밖에 나가서 걷다가 들어오는 게 심신을 단련하는 데에 효과가 좋대요. 누군가는 그걸 휴식이라고 부르고요. 저는 사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게 좋거든요. 산책이 휴식이라는 말에는 솔직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계속 움직여야 하잖아요. 힘도 들고요, 언제 어디서 누굴 마주칠지 모르는 길거리는 질색이에요.
오늘도 걷습니다. 제 휴대폰은 유난히 걸음을 예민하게 인식하는데요, 한 시간만에 팔천 보를 걸었다고 유난을 떨기도 합니다. 대충 만오천 걸음정도 걸었겠군요.
책도 비슷합니다. 글을 쓰고 읽는 걸 꿈꿨고, 꿈꾸고, 또 지금 열심히 하고 있고. 하지만 가끔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엮어 만든 이야기들을 읽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짧고, 아래로 손가락을 내리면 휙, 넘어가는 짧은 영상들, 남의 사진들. 한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 웹툰. 이런 거요. 책을 읽을 때면 –가끔은 만들 때면-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남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 또는 쓰는 기분. 어릴적 친구의 말마따나, 책을 읽는 게 여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가일 수도 없고요. (전공이잖아요.)
책 읽는 거 좋아해요,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때마다 ‘열심히 사는 기분’! 책을 읽는 건요, 앉아야 하고, 딱딱한 책상에 몸을 기대야 하고,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이곳 저의 방, 삶의 터전으로 옮겨 오는… 그만 할게요.
동기 중 누군가는 지하철을 타서 듣는 음악이 꼭 여행 같다고 합니다. 여행 좋죠. 그렇지만 저는 벌써 구 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하고 있는지라, 별 동의는 못 하고 그냥 그렇구나, 했어요. 그럴 수도 있구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무슨 목소리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제 목소리를 모르시는군요. 철로를 지나가는 회색 무쇠 열차 안에서는 무슨 소리든 적나라하게 들리고, 운이 나쁘면 땀냄새 나는 서로와 밀착해야 하고, 발 디딜 틈 없이 눌러 붙은 사람들 속을 팔로 쑥, 헤집으면서 지나갈게요, 내릴게요. 지하철 안에서 듣는 음악은 그러니까… 호흡 같은 거죠. 안 들으면 죽는. 이어폰을 너무 오래 낀 탓에 전 꼭 사오정처럼 남의 말을 곡해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거북이라고 듣고, 토마토를 카레라고 듣고.
밴드 음악을 좋아해요. 한 곡만 반복재생 하고요. 오월오일의 Tree. 또 사당역에서 환승하러 가야겠죠.
여기 아니면 저기, 저기도 아니라면 거기. 늘 피해다니는 일상이지만 어디서도 제대로 쉬고 있다는 기분은 못 느끼겠어요. 태초부터 무던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고, ‘너무 많은’ 세상이라고 떠드는 저 다큐멘터리가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든, 도시든간에, 아무튼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때면, 글쎄요. 제가 제대로 쉬고 있는 건 맞을까요?
누군가는 휴식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고 합니다.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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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저의 일상은 단조롭습니다. 학교 아니면 집. 학교에 가면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합니다. 동기들과도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강의실에서 카페로 계속 이동하죠. 저는 지금도 집에 있다가 카페로 이동했고 다시 스터디 카페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과제를 하기 위해서요. 저의 의지로 제 발이 바닥을 내딛는 것이지만 어쩐지 저는 강제로 실려 가는 느낌이 들어요. 자꾸만 끌려 당기는 느낌이요. 글을 쓰다 보면 내 글은 언제 쓰나 생각에 잠깁니다. 참 이상하죠. 언제나 저는 제 글을 쓰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학교는 수영장 같습니다. 열심히 헤엄치거나 물에 몸을 맡기고 유영을 하기도 합니다. 다리에 쥐가 나면 물에 빠지듯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다리에 한번 쥐가 나면 계속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그러면 수영장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저에게 그 행위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들거든요. 웃기죠. 저도 그래요. 일을 하는데 숨이 트인다니. 그런데 수영장 안에 있으면 처음엔 재밌는데 나중엔 밖으로 나오고 싶어지잖아요. 가만히 있어 아무 것도 안 해도요. 무작정 나오고 싶어지죠. 수영장 안에 있으면 어떤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에너지를 계속 쓰다 보면 수영을 하든 안 하든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때 밖으로 나오면 물에 차 있던 피부의 구멍들이 열리면서 순간적으로 환기가 돼요.
저는 타고난 집순이라서 집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사회적 활동과 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에너지의 급격한 소모를 요하는 활동일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로의 이동은 마치 수영장 안에서 걷는 느낌입니다. 내가 걷는다고 인지하는 빠르기보다 제 몸은 더 느리게 움직입니다. 숨이 차서 답답해집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는 저에게 그나마의 환기가 되어주고 있어요. 밖으로 나와도 사회인 것은 똑같습니다. 그래도 물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물 밖에서는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너무 힘들어서 기어 다니는 거요.
여러분의 수영장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밖으로 나와 무엇을 하시나요, 아니, 어디로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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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하고 싶다.”
요즘 자주 생각하고, 또 생각없이 내뱉게 되는 말이었어요. 힘들고 지치고 졸릴 때면 내 몸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고 그러다보면 한없이 가라앉고 싶어져요.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아래로. 그런게 잠적 아닐까요. 저에게 잠적이란 단어는 ‘사라짐’ 보다는 잠수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와닿아요. 같은 ‘잠(濳)’을 쓰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정말 ‘잠’이 자고 싶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잠을 잔다는 건 무의식의 세계로 돌입하는 것이고 그곳은 왠지 깊은 물 속 아래의 어떤 미지의 세계일 것 같았으니까요. 마치 심연처럼요.
왜 이렇게 잠적하고 싶었냐 하면, 당연히 휴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어요. 사람이나 기계나 멈추고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제대로 된 충전의 시간을 갖지 않고 계속 사용해버린 거죠. 그러니 저는 자주 뜨거워지고, 아팠어요. 제대로 일을 해내지도 못했고요. 휴식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왜 제때 하기가 어려웠을까요. 잠깐 멈추면 되는건데... 우리가 멈추는 순간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까 저 역시 멈추지 못하고 시간을 따라갔어요. 시간이 멈추면 그때 같이 멈출 생각이었던 걸까요? 모르겠어요. 그때의 저는 그저 시간을 따라가기 바빴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을 따라가다가 보리수가 후두둑, 떨어져 버렸어요. 균일한 사이를 두고 잘 자라나고 있었는데 이제는 듬성듬성하게 남아있어요. 누구를 탓할 수 없는 노릇이예요. 제가 시간을 쫓아가느라 그런걸요. 그렇게 되어서야 저는 멈췄어요. 나의 소중한 열매들을 너무도 많이 잃고 난 뒤에야 멈췄어요. 그런데 멈추니까, 좋았어요. 조금씩 열기가 식어가고 차분해졌죠. 잠을 잤어요. 꿈도 꾸지 않고.
휴식이란 무엇일까요? 저에게는 잠이었어요. 잠을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세상이 달라진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는 시간이 나를 약 올리며 뛰어가는게 아니라 천천히 따라오라며 손짓하는 것 같았거든요. 잠을 자는 일이 왜 필요한가 아까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런데 잠은 또다른 세계로의 진입이랍니다. 의식만큼이나 중요한 무의식의 세계로요. 무의식을 잘 지켜줘야 의식도 지킬 수 있다는 걸, 우리가 휴식이라고 말하는 잠이란 또다른 세계에서의 보살핌이란 걸. 그러니 당신도 편안히 잠 들길 바란다고요. 멈춘다는 것은 우리 세계에서의 시선일 뿐이니 아무 걱정 말고 푹! 잘 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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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더위가 익어가는 요즘입니다. 그림자가 짙어진다는 건 햇볕도 따라 밝아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데요. 저도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위해 그림자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아스팔트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제 모습을 볼 때면 개구리가 된 듯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위를 이기기 위해선 체면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여름이 다가올 때면 더위에 꺾인 몸과 마음이 무겁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요즘 들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간절히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고는 있는데 정말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인데요. 계단을 오르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 위 같은 상념에 빠져 시간을 죽이곤 합니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담벼락에 붙은 장미 넝쿨에 손을 할퀸 사실은 비밀입니다) 하고 있는데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요. 이런 요상한 감정의 빈틈을 한참 들여다보다 저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 이게 번아웃이라는 거구나!’
번아웃은 익히 알다시피 심신이 매우 지치고 고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현대인이라면 꼭 한번은 앓는 질병, 그러니까 속된 말로 ‘현대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지금 현대병을 앓고 있습니다. ‘현대’라고 하니 되게 세련된 질병인 것 같군요.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도떼기시장처럼 일을 벌여 두곤 있지만, 이 일이 과연 내 미래에 도움이 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이런 원망을 하지 못합니다. 일을 벌인 사람은 저이기에. 그 원망을 함부로 뻗칠 수는 없는 거겠죠.
하지만 저도 사람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사사로운 걱정과 부정적인 말이 섞여 나오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요즘은 노력 중에 있습니다. 내 욕심으로 뻗친 일을 타인에게 투정치 말고, 부정적인 감정을 주입하지도 말고, 상대의 선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말자고요.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더군요. 사람은 가장 힘들 때 본성이 나온다고 하는데, 아마 저는 완전히 선한 인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곧 여름 방학이 다가옵니다. 저 또한 짧다면 짧을 여름 휴식기를 기대하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지날 예정인가요? 저는 누구보다 많은 여름 과일을 해치울 것이고, 누구보다 땀을 많이 흘려 그만큼 맛있는 음식으로 보충할 계획에 있습니다. 또한 ‘뭐 하고 있지?’란 물음 섞인 부정보단 ‘뭐 하고 있지!’란 당찬 긍정으로 ‘뭐 하고는 있는’ 여름을 보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누구보다 당찬 기운으로 여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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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여유.
저는 이 말을 정말 좋아해요. 요즘 제게, 그리고 한 해의 절반을 열심히 달려왔을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일 것 같거든요. 차 한 잔. 그리고 거기다 여유까지 갖는 건 바쁜 일상 속에서 조금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우리에게 친숙한 건 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해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잖아요. 하지만 다가올 여름방학, 또는 여름휴가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는 차 한 잔쯤 선물해줘도 괜찮지 않을까요? 본격적인 ‘쉼’ 에는 마음의 여유도 준비되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저의 휴식은 이런 준비들을 필요로 해요. 우선 정리정돈이 잘된 방. 환기를 마쳐 공기가 쾌적해야 해요. 스탠드를 켜서 눈이 피로하지 않은 정도로만 방을 밝혀두어요. 노트북을 열고, (나의 뇌가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영화를 ‘멈춤’ 상태에 놓습니다. 여기까진 준비 단계에요. 중요한 건 그 다음. 그 날 내 기분에 맞는 차 한 잔을 내리는 것이 휴식을 위한 최종 관문이에요. 차가 내려진 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영화를 재생해요. 그리고 한 모금, 나를 기다리던 것들이 사라져요. 두 모금, 나를 재촉하던 것들이 사라지죠. 사라지게 만들고 싶은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영화를 보는 동안 차를 서너 잔은 비우는 것 같아요.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고, 영화 한 편 보기가 썩 쉽지 않지만 아무렴 어때요. 외부의 방해 없이 보내는 그 시간 자체가 저에게는 휴식이랍니다.
이쯤 되면 제가 어떤 차를 즐겨 마시는지 궁금하실 거라 믿어요. 유월이지만 한낮에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잖아요. 그러니 ‘냉침’ 했을 때 더 맛있고 시원한 차들을 찾게 되더라고요. 호박팥차, 녹차, 청포도 무당 아이스티, 페퍼민트! 이게 제가 여름 동안 달고 사는 차들이에요. 찬 물에 한두 시간 우려 놓고, 마시고 싶을 때 얼음을 동동 띄워 마시면 끝! 물을 데우지 않아도 되고 뜨거워 식혀 마시지 않아도 돼요.
사실 어떤 종류의 차든지 상관은 없어요. 그저 쫓기지 않는 마음으로 차 한 잔을 천천히 비울 시간이 주어지는 것. 여름을 기다리느라, 또 이미 겪느라 지친 우리에게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해요.
여러분은 올 여름 어떤 차를, 어떤 쉼을 마셔보고 싶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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